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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終)/금북정맥

금북정맥(대한산경표)이란?

by 수헌! 201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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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산경표상 금북정맥

신상경표상 호서정맥

일반적으로 금북기맥이라 칭한다.


대한산경표는 물줄기를 가르는 산줄기 기준으로 만들어진 산줄기 체계로서 

신산경표의 호서정맥중 속리산에서 칠장산까지 산줄기를 산경표에서 칭한데로 한남금북정맥으로 하고

칠장산에서 서천 장항의 금강 북쪽 울타리 끝까지 이르는 산줄기를 금북정맥으로 한다.


어느 명칭을 사용하든 같은 산줄기이고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이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가짐으로 산줄기를 대할 생각이다.


금북정맥이란? (대한산경표 산으로 박흥섭님글)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속리산(천왕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 이르기까지 한강과 금강 수계를 구분하는 분수계 역할을 하다가 안성 칠장산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김포 문수산을 지나 한강의 우측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한남정맥이 되고, 다른 한줄기는 백월산 등 충남지역을 가로질러 태안군 지령산을 지나 안흥진에서 끝나는 금북정맥이 된다.

 

정맥이 일반적으로 주요 강의 하구에서 끝나는 것과 달리 금북정맥이 청양 백월산에서 금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는 서천군으로 남하하지 아니하고 태안반도에서 끝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고, 해서정맥 또한 이와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정맥이 주요 하천을 유역권을 구분함이 아니라 생활권을 구분하기 위한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현재까지 산경표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산경표는 18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의 일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여 주요 하천을 통한 외부와의 소통과 장거리 물자수송이 이루어졌고 하천 주변의 농경지를 중심으로 도시와 생활권이 형성되는 등 수계를 구분하는 높은 산줄기는 주변과 소통을 단절하여 자연스럽게 주민의 생활권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북정맥을 산행한 사람이라면 비산비야의 산줄기가 주민의 이동을 제약하였을 것으로 보기 어렵고, 특이 예산, 홍성, 당진, 서산, 태안 등은 동일한 내포지방으로 불리며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는 수만은 도로의 터널과 교량, 교통과 통신의 획기적인 변화로 하천이 주민과 물자의 이동통로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분수계를 구분하는 산줄기가 더 이상 주민의 이동과 생활권을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산경표에서 정맥의 끝이 주요 하천의 하구와 불일치한 사례(한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등)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는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서 이미 있었다. 본인 또한 현대사회에서 하천과 산줄기를 생활권의 구분하는 기준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생각에서 정맥을 주요 하천과 관계로 파악하는 데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다만, 정맥의 명칭과 한남금북정맥 등 중복되는 산줄기 문제에 대하여는 견해를 달리한다.

나아가신산경표가 주요 하천을 기준으로 정맥을 재해석한 것과는 달리 지맥과 하천과의 관계에서는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지맥 또한 그 산줄기와 관계된 하천과의 상관관계를 중시하여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재해석하고 대한산경표로 남한의 산줄기를 “1대간, 9정맥, 175지맥으로 정리한바 있다.




<대한산경표는 박성태님의 호서정맥중 파란색 한남금북정맥,빨강색 금북정맥으로,분홍 금북기맥은 태안지맥으로>


산경표 기준 1대간 9정맥을 예전에 마쳤지만

대한산경표기준 1대간9정맥중 금북정맥중 백월산부터 장항까지 이어지는

금강의 북쪽산줄기(금북)를 이제야 시작하게된다.




<구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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