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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여행

금산사(전주 모악산)

by 수헌! 200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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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수 있게 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후 금산사의 모습이 크게 부각된 것은 통일신라 시기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 때문이다.
금산사에서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에 변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이 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금산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금산사사적"의 내용을 근거로 불 때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되었으며,

 이 후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메김 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미륵이라 하면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여러 경전을 통해 전해진 미륵신앙은 삼국의 불교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준 신앙이었다.

물론 어지러운 시대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자들이 미륵을 자처해 민중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초래케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진실된 미륵신앙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락을 주는 신앙이다.
미륵이란 범어 '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이것은 자비를 갖춘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자비라는 것은 포용력을 가지고 인류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대변하는 말로서 적극적인 종교적 실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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