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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산성일주

by 수헌! 2007.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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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산성일주

 

언   제 : 2007.9.9.(일)  맑음

어디로 : 마천역-2코스-서문-남문-동문-북문-서문-3.5코스-마천역

얼마나 : 약 6시간 20분 (충분한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기록

09:10  마천역                                      13:38  장경사

09:30  2,3코스 갈림길(산행시작)             13:50  장경사 신지옹성

09:40  쌍둥이 약수터                             13:58  동장대지

09:46  헬기장                                       14:27  북문

10:05~28  서문                                     14:33  북장대지

10:40~12:20  수어장대/점심                    14:45  연주대옹성

12:28  영춘정                                        14:56  서문

12:39  남문                                           15:15~30 계곡 휴식

12:53  남장대지                                     15:45  4코스 합류점

13:19  동문                                           15:50  2,3코스 갈림길

13:28  송암정                                                 산행 종료

 

팔현들의 나들이 산행날, 오늘은 남한산성 일주산행이다.

마천역에 모여 20여분을 걸어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고 2코스로 오르기 시작한다.

 

편안한 산책로 길은 헬기장을 지나면서 급경사 오름길로 바뀌고 

가파른 오름은 서문 좌측 산성 성벽에 이를때까지 이어진다.

 

2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서서히 서문을 지나 청량산 정상인 수어장대에 도착한다.

약속시간이 애매하기에 아예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퍼지고 앉으니

산행의 의지는 점점 꺽여만 간다.

 

이래서는 안되겠기에 친구들과 나중에 뒤풀이 식당에서

만나기로하고 마음을 다잡고 일어선다.

 

산성 성벽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서문에 도착하고

하산은 흘린땀을 씻을겸 3.5 계곡코스로 내려선다.

 

남한산성 일주코스는 중간 중간에 방앗간이 많아

친한 친구들과 함게 할때는 완주가 어려운 구간인것 같다.

 

어쨋건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흔적을 따라서

이기회에 좋은 역사공부를 한것 같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였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2코스로

 들머리

 쌍둥이 약수터

 헬기장...이곳부터 급경사 길입니다

 

 고생끝

 조망도 좋고

 길도 포근하고

 수어장대(서장대)...수어청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곳으로 서쪽을 관할하기에 서장대라고도함.

 
[장대]...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의 지휘처소를 말한다.
            장대는 성내의 지형중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각각 하나씩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5개의 장대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구축된 5장대중 동장대를 제외한 4장대는 17세기 말엽까지는 단층 누각건물의 형태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5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아있게 되었다.
         18세기 중후반에는 서장대와 남장대가 2층 누각형태로 건립되어 19세기 후반까지 남아 있었으며,
         그중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산 정상 삼각점

 

매바위...남한산성 축성시 책임자 이회의 억울한 죽음의 전설이 깃든 바위

 수어장대 암문

 남문 가는길

 영춘정

 멀리 광주의 검단산

 남문(지화문)...

 남문 밖의 풍경

 봉선화가 많습니다

 여담(여장)...성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이 여장은 다른 용어로 여담, 여첩, 치첩, 타, 여원 이라고도 하고 고어로는 성각휘, 성가퀴, 살받이터 등으로 불려졌다.

                  또한 설치하는 목적에 따라 치폐, 첩담, 비예, 희장 이라고도 하였다.

 제1옹성 암문

 제2옹성

 남장대지

 제2옹성과 검단산

 제2옹성 암문

 보수중

 암문

 더 정감이 갑니다

 

 

 망월사

 동문이 보이고

 시구문

 동문앞 도로...이곳에서 외성으로 돌까 내성으로 돌까 잠시 고민을..

 수문

 동문

 

 송암정...성 밖의 동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오르면 바위절벽과 그 사이에 말라 죽은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황진이의 설법에 감명받은 기생이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렸으므로

             '대부송' 이라고 부르는 그 소나무이다.

 장경사

 장경사 암문

 장경사 신지옹성

 군포지...성을 지키는 초소가 있던곳

 동장대지

 암문...외성인 벌봉으로 연결

 동장대 암문

 군포지 암문

 군포지 암문...안에서 본모양

 수구

 돌탑

 

 군포지

 북문

 북문앞 도로

 북장대지

 

 예봉산과 하남 검단산

 연주대 옹성

 금암산을 지나 이성산으로 연결되는 능선

 연주대 옹성에서 바라본 광주 검단산

 북한산 도봉산 그리고 우측의 불암산

 연주대옹성 암문

 매탄저...유사시를 대비해 숯을 묻어둔곳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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